탤런트
탤런트
첫째는 그녀의 출현이 이 사회에서 상징하는 것은 몇 가지나 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생각나는 것이라면, 그녀의 미모에 관해서는 우선 제껴 두고,-뻔한 여성의 상품화 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인식되네요. 우선 우리는 그것을 학벌의 권위의식이 사라져 간다, 라고 얼핏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그것은 그보다는 권위의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그녀와 그리고 몇몇 연예인들은 그 후광을 아직 톡톡히 입고 있는 사회입니다.-이젠 명분 보다는 경제성을 추구하는 ,즉 사회적 욕망의 표출이 노골화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연예인이란 대중들에게 출세의 지름길로 가는 선망직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설대 출신들 그들조차도 이제 수줍음이 없어져서 온갖 자릴 다 탐식하는군요. 허식이 없어졌을 뿐이라구요? 그렇기도 할겁니다. 그러나, 허위의식은 나쁜 것이지만 그것이 사회에 유용한 측면도 있긴 있거든요. ‘염치’ ‘체면’ 그런 것 들요.
둘째는 그녀의 미모에 관한 것인데 그녀의 집안 재력이 어떤진 알 수 없습니다만 이젠 잘 사는 집 아이들이라 해서 머리와 미모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젠 일반화된 이야기지만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미모라면 당근 ‘성형수술 ‘같은 걸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만 그 보단 혈통이 성형되었다고나 할 까요. 예전엔 돈만 많고 교양과 학식이 모자라면, 실제로 그런 졸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선망하면서도 경멸을 받는 것이 이들 졸부층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세대가 바뀌면서 그림이 바뀌었습니다. 돈의 힘이라 할 수 있겠는데 ‘돈’을 밑천으로 신분과 교양을 가진 사회로 2세들을 진입시켰습니다. 서울대의 50%이상의 아이들이 강남 출신이라더군요. 맞나?.. 어쨌든. 아주 적절한 tv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가문의 영광’이란 것이었는데, 동명의 영화보다도 시작하는 자세가 더 진지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뼈대 있는 집안의 교양덩어리에다 순정적이고 그러면서 고집도 있고 물론 머리도 좋은, 돈 (많은) 빼고는 온갖 것을 다 갖춘 여성과 강남 졸부 2세이자 머리 좋은 유학파지만 콤플렉스를 갖춘 남자의 ‘결국은’ ‘사랑’으로 이루는 행복한 결합을 그린 드라마였습니다. 작가는 약간 뭔가 찜찜했던 모양, 영악한 냉혈한이었던-ㅎ, 시쳇말로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지요^^- 남 주인공 졸부집 아들을 여자의 사랑으로 회개 시키기도 합니다 ^^ 자. 누가 태어날까요? 한 점 티없는 생활이 보장된 교양, 학식, 신분을 두루 갖춘 3세를 우리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드러운 말로 사회 지도층으로 입성 할 것이고 뭣한 말로 길이 보장된 유복한 부르쥬아 계급으로 생을 누리게 되겠죠?
그래서요? 요는 드라마 속의 여성은 ‘족보’라는 것과-처음에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의 한 ?을 풀어주기 위해 돈을 싸들고 족보를 사러 여자를 쫓아 다닙니다. 여자는 역사학을 가르치는 대학‘훈장’으로서 전통에 대한 강한 의식과 인간애도 갖추고 있습니다- 학식과 미모, 교양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그렇지도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돈과 결합할 수는 없는 것이죠. 따라서, 이제 그들은 그들만의 천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니 비싼 과외 시키고 돈이 있어 유학도 보내고 그리고 유수한 집안과 친분은 물론 사돈도 맺고… 돈은 물론 법과 권위 학식 모든 게 다 손에 잡히게 됩니다. 틈새를 기대하세요? 넘쳐나는 드라마들처럼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것을요? 세상 좀 곱게 보자구요? ㅎ, 그 인터넷 광고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나오는 ‘무슨 무슨 클럽’들에 대한 잠입 르포를 읽은 기억이 나는 데… 볼만하더군요. 팔자니까 자족하면서 살면 되지 무슨 소리냐, 라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그런 의도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은 이제 성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교양 없는 졸부’들이 아닐뿐더러 가식도 촌스러움도 이젠 그들 것이 아니란 겁니다. 그리고 틈새 따윈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성’이 형편 없으리라 상정하지 마십시오. 배고품이 없고 잘 교육받는데 어찌 품성이 나빠집니까? 시중의 행태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그럴 수 있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요.
어쨌든 그들은 이제 아주 먼 곳에 높은 곳에 자리합니다.
시작은 다 ‘돈’의 힘이죠.
언젠가 읽은 글 중에 너무 오래라서 까마득하지만 ‘갈등의 연구’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책에 따르면 갈등이란 동종의 집단에서 더 심하게 일어난다는 것이 요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제 그들은 그들끼리 우리 서민들은 우리들끼리 더 부대끼고 더 갈등한다고 상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손이 닿지 않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옆 사람이 경쟁상대이고 괴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럼 돈 벌면 될 거 아니야 하시겠지만 이제 얼마나 버실 수 있습니까? 과연 신분 상승 하실 만큼 버실 수 있습니까? 돈 별로 없어도 별로 아쉬울 게 없다구요? 자족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실제적인 폭력과 난무하는 현실적인 폭력 앞에 있는 그들은요? 적선 하신다구요? 아름답지만, 없는 것 보단 났지만 과연 그걸로 해결 되나요?
미모와 교양 학식 모든 게 상품입니다. 거기엔 이젠 수줍음 조차도 없어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봅시다. 당신이 그 중 하나를 가져서 그로 인해 신분이 좀 나아졌다고 합시다. 그래서 자신의 2세를 기대해서 온갖 걸 쓸어붓고 있다고 할 때 당신의 이웃이 어디쯤 서 있는지 생각해보실 의향은 혹 없으신가요? 그럼 어쩌냐구요? ^^ … 우리 끼리라도 좀 화목해야하지 않을까요? 적이 필요하시다면 당신의 적들은 다른 곳 멀어서 실감도 나지 안겠지만 저 먼 곳에 있습니다. ‘적’이란 어휘는 좀 그렇긴 하지만요. ‘다른 사람들’이라고나 할까요. 좀 헛갈리게 써졌습니다만 당신의 화살 끝이 어디로 가야 되는 지를 한번 더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이지요.
엉뚱하게 흘러가 버렸습니다만 저는 여기서 영화 ‘대부’에 대해 말하려고 했습니다. ‘대부’를 보시면 여러분들은 아까 제가 말한 이 약육강식의 리얼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분 상승은 어떻게 이루워지는지, 그 스토리들은 어떤 처절한 불법과 피비린내 같은 걸 동반하고 있는 지를, 오늘날 그들의 평안이 무엇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를 이 오래된 영화에서 제대로 보실 수 있으십니다. 영화는 영화라구요? 혹은 영화 속의 그게 모두 사실이냐구요? 뼈대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배우들 얼굴이나 들여다보지 마세요 제발. 그것도 보긴 봐야 하지만 뭐 촛점을 놓치시진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 만일 갱들이 우상화 돼있다는 불만이 들거든 이어서 갱들에 대해 좀더 리얼한 영화 ‘좋은 친구들’을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영화 ‘대부’에서 얻을 것은 좀 얻어가세요. 폭력의 미학에 취하시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영화적 재미와 메시지 사이의 간극이자 딜레마가 되겠지요만, 사실 현실의 폭력적 상황을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을 경우 우리는 영화를 통해 수많은 폭력을 접하게 되고-현실과 제도의 폭력은 더 간교하고 리얼한 것이어서 맞대응을 하자면 그리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시계태엽 오렌지’란 영화를 보시면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도 그냥 보아서는 철부지 깡패가 혼나는 것 정도로 이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아주 흔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며 저의 어르신께서는 ‘바람둥이 여자의 끝’을 그린 걸로 이해하시더군요 ^^ 그래서 영화를 보는 데도 약간의 주의와 공부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그에 대한 그것 자체에 대해 심취하게 되고 그 무자비함에서 얻는 쾌감을 찬미하게 까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본능이 불러오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여기엔 약간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이 왜 우리에게 그토록 어필해오는지를 생각해 들어가다 보면 어떤 접점을 찾게 됩니다. 어떤 것과의 접점이냐면 자기 성찰과 더불어 인간적인 본능과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 대한 자각이 그것입니다.
말이 또 헛나갔습니다. 하여튼 ‘대부’는 메시지가 강렬한 그리고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한번 더 봐주실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