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란 영토의 확장, 다르게 말해 오지랖을 넓히는 것이다.
탈영토된 영혼이나 본질을 다른 영토 속에서 찾고, 거기에 이정표를 세우는 과정이랄까?
탈영토화와 영토화가 이중 작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상과 육체로부터 탈영토하고, 이것이 또 다른 숙주를 찾아나서 영토화하고, 또 다시 탈영토, 또 다시 숙주를 찾아 영토화, . . .
은유는 마치 자본처럼 작동한다.
cf. 폴 리쾨르는 이야기와 은유의 상관관계에 관한 탁월한 책에서 말하길, 은유란 일상적이고 기술적이며 대상지시적인 언어에 의해 말해질 수 없는 외부의 요소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언어도식 내부에 균열을 내고 거기에 새로운 논리 공간을 세우는 길을 낸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했던 "생산적 상상력"이다.
리쾨르의 생각을 빌어, 다음과 같은 언어의 단계들을 잠정적으로 설정할 수가 있을 것 같다.
1. 물질적 수준 (이 단계는 관념의 물질화, 가령, 이데올로기, 습관, 고집, 법, 수학적 공리, . . . 등과는 관계가 없이, 소리나 색과 같이 순수하게 물질적 수준을 말한다)
2. 지시적 수준
3. 구조적 혹은 통사적 수준
4. 의미론적 수준
5. 화용론적 수준
6. 은유적 혹은 상상적 수준
이러한 단계들은 언어가 점차 주관성의 형태로 깊어져가거나, 주관성과 호응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