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한 노고가 아까워 왔습니다.
이 책은 소설입니다만 끝없이 당신,-바로 이걸 보시는 당신- 그대와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좋은 글이고요.
글을 이런 식으로 잘라내면 안되겠지만 이렇게 라도…
제가 잘라낸 부분은 물론 제가 여러분과 말하고 싶은 부분을 오려 낸 것입니다.
당신 자신인 당신을 향한 물음들/한없이 낮은 숨결/
…………….
마침내, 당신의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당신의 현주소는?
이왕이면 크게 놀아볼까요? 그렇다면 당신의 눈앞에 전 세계 지도를 가득 그려 보십시오. 그리고는 세계인으로서. 세계여행 책자에서 기웃거렸던 사진의 내용이라도 떠올리며 그 너른 지도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여기저기 훑고나서, 천천히 고국으로 돌아오십시오. 한국인이 되어, 아시아의 동쪽 끝 여기로. 어떻습니까, 세계의 눈으로 본 한국이? 배를 탱탱하게 내밀고 앉은 무딘 형상의 중국이 여차하면 한 손에 움켜 쥘 것 같은 곳(그런 느낌이 듭니까?), 그 머리 위에 올라타 발톱을 꽉 처박고 거대하게 웅크린 야수 꼴의 소련이 유럽을 향해 눈빛을 빛내며 슬그머니 꼬리를 들이밀고 있는 곳 (표현이 너무 조잡한가요?), 공룡 같은 몸을 잘 도 변신시키는 유동체의 미국이 드넓은 태평양이 되어 거센 해일을 휘몰아 오는 곳 (비유가 걸 맞는 것 같습니까?), 그 안을 유영하던 식인어 일본이 바짝 다가와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싶은 곳 (이건 또 어떤가요?), 여기! 당신은 옛‘국민학교’ 교실에 그려져 있던 토끼 모양의 한반도를 기억하시는지요? 두 귀를 꽉 붙들린 채 순진하게 쪼그린 그 토끼 그림을 요즘에는 호랑이로 자주 바꾸어 놓더군요. 보셨습니까? 호랑이의 기상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떠세요. 왠지 벼랑에 두 앞발로 절박하게 매달려 있는 인상은 아니던가요? 너무 비관적입니까? 그 반박의 근거는? 물론 한국판 세계지도는 그렇게 버팅기고 있는 이 땅을 언제나 한가운데 위치시켜 그려놓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또한 당연하겠지요. 자신에겐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니까. 누군가가 다분히 철학적으로 늘어놓은 사변을 빌자면, 자기가 없으면 세계도 없는 것 아닐까요?
그런 자존심으로, 그러나 무엇보다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참 모습이 중요하다는 걸 전제하면서, 이제 상징적 비유를 떠나, 세계에서 일흔 아홉 번째 크기의 국토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구밀도를 지닌, 천연자원은 거의 없으며- 이 점에서 옛날 교과서는 우릴 속였다- 인간의 두뇌와 육체만이 자산이라는 이 쬐그만 ‘삼천리 화려강산’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확대시켜 봅시다. 조금 전의 세계지도만한 대한민국 지도로. 국토의 윤곽인양 엷은 녹색 지대가 그보다 훨씬 넓은 층층의 갈색지대를 둘러친 거기서 낯익은 한글의 지명들이 분별되나요? 정치. 경제의 중심으로 날로 비대해지는 서울, 한국의 곡창 어디, 교통의 요로이자 상업 도시인 어디, 해양의 전진 기지라는 어디, 교육의 도시 어디, 공업단지 어디, 석탄의 어디, 세계적 고도인 어디, 절경의 어디, 군사도시 어디, 역사의 어디… 이름없는 어디, 깡 촌의 어디, 두메산골 어디, 바다 한복판의 어디… 거기서 당신의 현 위치를 찾으셨습니까? 그리로 의식의 돋보기를 더 가까이 들이대볼까요? 한국어의 우주 속에 바글대는 생명의 움직임이 보이도록. 그런데, 젠장, 당신 동네 지적도에 깨알같이 적힌 번지수들만 보입니까? 헤아리기조차 힘든 그 무수한 삶의 자리 속에서 당신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느끼시나요?
어느 시의 무슨 구 무슨 동 몇 번지, 혹은 어느 도의 무슨 군 무슨 면 무슨 리 몇 번지. 당신이 사는 곳은 도시의 어느 주택가인가요? 요즘엔 주택가도 천차만별이라는데, 어디 근처에 연립 주택이라도 들어서려 하면 동네 품위 떨어진다고 합심해서 반대 데모하는 가구당 몇 백 평짜리 고급 주택가인가요? 아니면 변두리 산동네의 임시 번지 수에 사시나요? 그렇고 그렇게 불편한, 소시민들이 다닥다닥 한 뼘 땅을 나눠가진 지역입니까? 끝없이 자연을 밀어내며 들어서는 아파트 촌, 세 자리 숫자 동의 네 자리 숫자 호에 다른 주민들과 아래. 위로 포개져 주무십니까? 아예 그런 도시와는 거리가 먼, 논밭 여기저기에 집들이 띄엄띄엄한 농촌의 소. 돼지 우리 곁에서 나란히 아궁이를 피우시나요? 어떻습니까. 당신이 자리잡고 있는 그 곳의 생활은 살 만한가요? 갈수록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데, 이웃과는 잘 어울리십니까? 너무 잘 동화되어, 도대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시겠습니까? 어째, 경제적으로 수준 차이가 나서 불편하십니까? 주위가 영 무식쟁이들이라 더불어 말이 잘 안 통하시나요? 고사 떡은 좀 나눠 드시고요? 집 꼬마들은 자주 오가나요? 소리 꽥꽥 지르며 싸움은 안 해보셨습니까? 그래, 그곳엔 얼마나 오래 사셨나요? 몇 대를 물려받으며 버텨오셨나요?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오랜 세월의 정처로 과거를 다져오셨는지요? 그렇다면 그곳을 계속 지키실 예정이십니까? 이젠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반대인가요? 툭하면 옮겨 다니신 게로군요? 거긴 무슨 사정이 있었나요? 지속적으로 집 평수 늘려 가느라고요? 배 곯지 않기 위해 하염없이 떠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까? 남의 집살이로 쫓겨 다녀, 어디 꾹 눌러앉고 싶은데도 여건이 그렇지 못한 건가요? 그래서, 한군데 발 붙이곤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세상풍파로 할 수없이 이주한 경험이 한 두 번 있다고요? 그러면 지금은 안정이 되셨습니까? 낯선 새 땅에 뿌리 박기는 얼마나 힘들던가요? 아직도 보금자리가 허공에 떠있는 기분이고, 모든 생활방식에 서투르십니까? 어떡하지요? 시간 가기를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변을 당신에게 익숙하도록 바꾸어 놓기라도 하시겠습니까? 또 이사하시려고요?
요컨대, 당신의 현 위치가 당신에게 합당하다고 느끼십니까?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십니까? 당신이 합당하다는 것은, 그저 당신이 영위하는 조건들이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는 뜻인가요? 당신과 다른 위치의 남들까지를 고려한 자기 객관적 판단의 결과인가요? 만약 당신 자신은 만족스럽지만 다른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대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남의 일에 왠 참견이냐고 불쾌해 하시겠습니까? 이와는 달리, 당신의 현 위치가 바뀌어야 한다면, 그건 왜지요? 당신이 개인적인 노력을 더 기울이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인가요.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당하는 부당한 대가의 결과라는 말인가요? 그러면 당신은 지금 당신의 현 위치를 수정할 비장의 계획과 작심을, 혹은 언젠가 맹목적으로라도 폭발시킬 분노를 간직하고 있습니까? 이미 모든 걸 체념한 뒤인가요?
당신이 대답을 연기하는. 사이.
아마도 당신의 그 거주 상황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며 사는 가와 관계 있을 터이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직업 또는 신분은?
세상에는 참 얼마나 많은 직업들이 널려 있는지. 그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통해 이 땅에 부지하며 밥 벌어 먹고, 혹은 그런 수준을 넘어 생활을 함빡 즐기며, 혹은 삶의 보람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선 최대한 포괄적으로 묶어, 당신은 월급쟁이십니까? 말이 월급쟁이지, 턱을 높이 쳐들고 “김비서, 저분께 내 명함 좀 드리지. 그리고 골프 예약 확인해 주고” 하는 회사의 중역, 말머리마다 정치란 어쩌고 해싸면서 선거 때만 되면 몇 억씩 풀어 쟁반 돌리고 관광버스 대절하기에 바쁜 국회의원, 걸핏하면 “지금이 어느 땐데…” 하며 책상을 꽝꽝 두드려 대는데 무슨 수로 저리 자꾸 기름져지나 싶은 고위 공무원, 이십 대부터 배 두들기며 영감 소리 들으면서 시커먼 쌀자루 같은 거 뒤집어 쓰고 근엄하게 법을 논하는 판.검사, 늘 꾀죄죄한 차림에 끽소리도 못하는 주제에 괜스레 자존심만 높은 교수 등등에서, 외국인 관광 안내에 더 정통한 무역회사 말단 직원, 아무리 물어도 침묵으로 선문답하는 동회 서기, 달력 체계와 근무 일이 완전히 다른 공장 근로자, 퇴직금이 따로 없는 식당 종업원, 24시간이 낮이고 24시간이 밤인 아파트 경비원에 이르기까지, 계단도 너무 층층이라 그렇게 묻는 게 타당할런지요. 하여튼 그런 식으로 나누면 개인 면허업이나 사업은 따로 쳐야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돈을 때로 벌긴 하는데 쓸 틈이 전혀 없는 의사신가요? 사기꾼과도 벌이만 된다면 법의 이름으로 손을 잡는 변호사?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사환과 둘이 둘러 앉아 대표 노릇하며 미국 이민 갈 기회나 노리는 오퍼상? 전화와 자가용과 말솜씨로 복부인들 꼬드기며 재미 보는 부동산 중개업, 근근히 연명하는 구멍가게나 보따리 싸들고 일감 찾아나서는 목수. 미쟁이도 여기 포함 시키나요? 리어카 노점상들은요? 막노동판의 노무자 같은 일당제 옆에, 건당 치기도 있습니다. 월부 외판원, 도박꾼, 도둑, 제비족, 술집 웨이터나 접대부, 창녀… 혹시 고상한 자유업에 속하십니까? 시인, 소설가, 번역가, 자유 기고가 따위, 어디 발 못 붙이는 머리 큰 사람들의 마지막 직업으로서의 문화업. 일년을 한번 수확으로 하는 농부들은 어떤 종류의 직업에 끼지요? 교회나 절 문턱에도 한 번 안 가본 사람이 죽었는데 천당. 극락 빌어주고 특별 헌금. 시주 챙기는 목사 승려들은? 그리고 한번 가지면 보통은 평생 유지되는 직업도 있지요. 가정주부. 결혼은 안 했지만 그저 ‘가사’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많구요. ‘무위도식’은 어떤가요? 차마 말 못하고 미뤄 왔는데, 무직이십니까? 어쩌다가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데서도 받아주질 않습디까? 당신 경우는 아직 취직 할 때가 안된 건가요? 때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 학생? 뭐니뭐니 해도 역시 한 때의 행복한 신분은 학생일 것 같은데. 요즘은 입학시험 .취직 시험 준비 때문에 그렇지도 않다구요? 그만 멈추지요. 그런데 참 걱정입니다. 그렇게 한없이 다양할 수 있는 당신 신분에 대해, 어디다 초점을 맞춰야 모든 당신들을 향한 물음으로 모아질 수 있을는지. 고루하긴 해도, 윤리 교과서 흉내를 내 볼까요? 이렇게…
당신 인생의 목적에 비추어(얼씨구!) 어떤 신념을 가지고 직업을 선택하셨거나 선택하실 예정입니까? 역사와 민족을 위해서, 철저히 상의하달에 충실한 정치가를? 사회정의를 위해서, 유신헌법 같은 제도하에서도 끝내 직분을 충실히 지키는 법조인을? 사회 복지를 위해서, 영원히 당분간 악착같이 긁어 모아 무한히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인을? 진리를 위해서, 철저하게 현실과 담쌓는 학자를? 저 높은 신의 뜻을 위해서, 저 높은 성전을 세우려는 성직자를? 왜 비꼬기만 하냐구요?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내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지 않고 이 소설적 심문이 끝이 날 것 같습니까? 당신을 들쑤셔야 반응이 나오지요. 아니면 아니라고 자기 옹호라도 할 테니까요. 이 기회에 아주 툭 까놓고 물어볼까요? 당신은 잘 먹고 잘살기만 한다면 아무 짓이나 닥치는 대로 할 심보지요? 아니? 당신에게는 이건 애당초 차원이 다른 얘기던가요? 그러니까 당장 내 한 몸, 내 한 가족 풀칠하기도 벅찬데 무슨 신념이니 목적이니 개수작이냐, 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항변이 당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고는 믿으십니까? 그러니 당신들 모두에게 이렇게 묻는 게 낫겠습니다. 사람답다는 걸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신은 정녕 사람답게 살고 있습니까? 탈세액 쌓인 비밀 통장의 계산을 마치고 고즈넉히 차를 마시다 무료한 하품에 찔끔 도지는 비감정적 눈물 때문에 문득 내가 언제 무슨 까닭으로 울어봤던가 되뇌이며 회상의 실타래를 풀게 될 때, 푹신한 침대에서 비디오로 포르노를 틀어놓고 격렬하게 좆.씹을 빨고 나서도 편안한 잠이 안 올 때, 늦은 퇴근길에 무조건 취하고 싶어 포장마차에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일 때, 기계 앞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동작이 흐트러질 때, 수돗가에서 빨래하던 손을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대상 없는 야속함을 느낄 때, 멋 모르고 보채는 아이들 앞에서 오로지 한숨밖에 건네줄 것이 없을 때, 책 속의 평범한 한 마디가 돌연히 깊은 슬픔을 북받치게 해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먹일 때, 절망적인 어떤 남들을 보며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일 때, 아득히 그저 죽고 싶을 때…, 그런 때, 당신은 , 이게 사는 거냐, 왜 살고 있는 거냐, 자신에게 되묻게 되지 않는지요? 지금 내 앞에서 혼자 당신은 당신의 현재에 대해 무엇을 되묻고 있습니까? 그 되물음이, 그런데 당신의 현실로 실천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마치고도 한참 침묵이 흐르는, 사이
당신 정말 이러기요?
꽝! 내가 책상을 치는 소리와 동시에, 갑자기 당신 빛기둥의 조명도가 높아진다. 처음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극도로 밝은 빛.
편하게 심문에 응하도록 해준다고. 이렇게 희미하게 굴거냐 말이야, 엉! 뭐야 이거. 그것도 여기라고 해대는 꼬락서니하고… 물 좀 먹어봐야 알겠어? 전기고문이 어떤 건지나 알어? 왜 대답을 슬슬 얼버무려? 내가 듣는 것도 아니쟎아! 당신 자신한테만 정직하면 되는데, 그런데 당신 자신을 속이려고 해? 이건 천하의 후레자식 아닌가! 그런 걸 바로 속물이라 그러는 거야, 알어?
잠시 사이.
지금부터라도 똑똑히 대답하시오, 알았소? 왜 대답이 없어?
당신이 “예” 하고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어서 묻겠소. 당신의 학력은?
국졸? 중졸? 고졸? 대졸? 뭐, 대학원 졸이라구? 이보쇼, 그건 전문직에나 필요한 학력이니까 여기선 거기까진 언급할 필요 없수다. 대졸보다 한 수 위라는 걸 꼭 강조하고 싶소? 군복무 마칠 길이 거기 있어서거나 대학은 졸업했는데 시집오라는 남자는 없고 해서 그저 다녀 본 것은 아니고? 왜 박사라도 되쇼? 그러면 당신도 ‘선생’이란 호칭보다 ‘박사’라는 호칭을 더 사랑하우? 그러니까 당신도, 어디서 어떻게 뒤집어쓰고 나타났는지, 박사 호칭 가진 치들끼리 모여서 서로 서로 김박사, 이박사, 박박사하고 불러대는 그런 부류에 속하시오? 군대식 위계질서 사회에 속해 있다면 모르겠소만, 박사까지 돼서 뭐가 젊쟎고 뭐가 꼴불견인지 잘 모르겠소? 아, 당신은 그런 거 하고 상관없는 그냥 대졸이나 대재요? 요즘엔 우리말 문장의 주어. 술어도 못 맞춰 쓰는 대학생들이 지천에 깔려 있던데, 당신은 어떻소?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하는 심보로 4년 때웠거나 때우는 중이오? 비싼 등록금 낼 능력은 있었던 모양이시지? 그럴 처지가 못 되면서도 어떻게든 대학은 나와야 사람 취급 받는 다는 생각 때문이오? 도대체 뭐하러 대학에 갔소? 웬만한 데 취직하려면 꼭 대학 졸업장이 필요해서? 그래도 자가용 모는 알랭 들롱 같은 남자한테 시집 갈려구? 하. 참된 지성인이 되어보려고? 아니, 당신은 결국 대학에 못 갔소? 능력이 모자라서? 공부엔 영 취미가 없어서? 당장 가족을 떠맡아야만 하는 불행한 입장이었소? 남동생이라도 대학 보내려면 누나인 당신이 어디서든 돈을 벌어와야 했기에?
그래, 그러면 당신, 학교에서 뭘 배웠소? 국. 산. 사. 자, 도. 실. 음. 미. 체? 국, 영, 수, 정, 경, 상, 지, 윤, 물, 화, 생, 음, 미, 체, 교? 전공필수.전공선택, 교양필수, 교양선택, 일반선택? 우리말 회화와 덧셈, 뺄셈에 애국가까진 누구나 확실한 것이고, 그리고 머릿속에 무엇이 저장되어 있으시지? 미적분이나 집합이? 물리 분자식이나 세포 조직이?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대볼 수는 있으시겠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하는 시 한 구절을 외고 있소? 무엇 때문에 깃발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합디까? 그런 건 뭐 다 한 때 이야기요? 그렇다면 당신은 학생 시절에 얻은 무엇이 삶에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소? 졸업장 그 자체만 빼면 별로요? 고도의 재치를 요하는 화술이오? 블루스와 디스코 스텝이오?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전공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영어회화?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기조차 귀챦소? 귀챦아도 끝내 생각해서 대답하시오. 그 생각이라는 것을 당신은 배우지 않았소? 생각해 보시오. 생각에 대해서. 혹시 당신은 은연중에 생각을 가능한 한 죽이도록 주입 받았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신 앞에 놓인 대상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적이 없소? 어쨌었는지 전혀 모르겠소? 당신의 현실에서 검증해 보는 것이 빠르겠구려. 하나의 예지만, 당신은 최근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의 차이가 무엇이며, 왜 그런 차이가 나며, 그 차이 사이를 당신은 무엇으로 어떻게 메워야 할까 생각하고 있소? 이번엔 보다 당신 자신에 직접적인 예지만, 당신의 관심이 가장 쏠리는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명예, 돈, 건강, 가족의 화목 등등-에서건 사회적인 차원-올림픽 개최, 제5공화국 청산, 노사문제, 반미 감정 등등-에서건 떠오르는 대로 밝히고, 그 무의식적인 관심이 당신의 어떤 인생관과 욕망에서부터 흘러나오는지 스스로 의식화시켜 설명 할 수 있겠소? 엄중히 반복하겠소. 끝내 생각해서 대답해보시오.
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하는, 사이.
당신의 가족관계는?
결혼했소, 안 했소? 그와 상관없이 당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배우자상은 어떤 거요? 가정에 충실한 남편 또는 순종하는 아내? 돈 잘 버는 남편 또는 억척 같은 아내? 남들이 침 삼킬 만큼 잘 생긴 사람, 아니면 마음씨 고운 사람? 이런 측면에선 어떻소? 당신의 배우자는 이 험한 세상에서 같이 투쟁해 나갈 동지요, 세상살이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는 안식처요? 한편, 이혼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서로 틀어지면 얼마든지 헤어질 수 있겠소. 두 집 살림을 하더라도 절대 불가요?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성격이나 성능력의 균열이 깊으면 할 수 없이?
부모는 계시오? 부모에 대한 일상적인 감정은? 부모에게 감사하오? 이 지겨운 세상에 자신을 낳아놓은 데 대해 증오심을 느끼시오? 부모와 나는 다른 삶이니 관계없는 일이오? 그 부모가 당신을 충실히 키워주었다고 판단하오, 그 반대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은? 부모로부터 무엇인가 물려받기를 기대하오? 그래서 함께 살고 있소? 결혼과 부모의 관계에 대해선 어떻소? 함께 모시는 게 마땅하다고 보시오? 양로원에 보내드리는 한이 있어도 무촌의 관계를 더욱 깊이 기려나가겠소?
자식은? 자식을 원하오? 원하진 않지만 가질 수 밖에 없소? 얼마나? 씨 뿌리는 것만이 죽어서도 남는 일이니까. 또는 많아야 성공의 확률도 커지니까 얼마든지?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하므로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아들 딸 구별 없이 둘 낳아 잘 키우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고 싶지 않소? 책임지기가 두려워서? 이 고통의 시대를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식이 있다면, 당신은 그 자식에게 어떤 희망을 걸고 있소? 못 이룬 당신 꿈이 성취되기를? 쓰러져가는 가문을 바로 잡기를? 그냥 제 앞가림이나 잘 하기를? 늙었을 때 쓸쓸하지 않게만 해주기를?
여타 친척들은? 친척들이 누가 있으며 어떻게들 살아가고 있는지 가끔 소식은 접하오? 명절이면 함께 모여 빈대떡이라도 붙여먹고? 어디로들 뿔뿔이 흩어졌는지 아득할 뿐이오? 친척들이 있다는 것이 간혹 빚보증이라도 서줄 수 있어 든든하게 여겨지오? 친척계도 먹고 튀는 아등바등한 사이들이오? 지네가 그만큼 살면 우리 자식 학비라도 보태줄 수 있으련만,싶은 원망을 주고 받소? 사촌이면 벌써 남이니까 무심할 뿐이오?
아니, 그저 혼자 있고 싶소? 남이란 다 싫소? 어쩌다가 당신은… 가족이 사회적 인간 관계의 최소 단위라면,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가족관계를 통해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스스로 가늠해 볼 수 있으시겠지. 거기까지를, 한 번 털어놓아보실까?
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하는, 사이.
당신의 재산은?
어허, 이 사람 또 눈길을 피하려고 하네. 확실히 해요. 확실히 해! 뭐요? 가난한 게 부끄럽다는 뜻이오, 지나치게 가진 게 많아 입 열기가 죄스럽다는 거요? 자, 이제 심문도 얼마 안 남았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먼저 당신의 자기 인식을 확인 하겠소.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어떤 수준에 속한다고 보시오? 상? 중? 하? ‘상’이라고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고, ‘하’라고 말하긴 자존심 상하고, 그래서 당신도 우리 국민 60프로가 스스로 소속되는 걸로 말하는 중산층이오? 대체 월수입은 어느 정돈데? 애 중. 고등학교 교육비도 대기 벅차 빚내면서 그러는 거 아니오? 아무튼 자세히 명세서를 작성해 봅시다. 부동산, 이건 대개 주택이지. 주택 구분부터 대답해 보시오: 자가? 전세? 월세? 기숙? 무허가? 자가면 크기가 얼마나 되오? 대지 몇 평, 건평 몇 평, 몇 층, 아니면 아파트 몇 평형? 시가는 얼마? 상급의 당신, 그거 말고 남들은 집도 없는데 여기저기 박아둔 땅들 다 털어놓으시오. 그것들은 용도가 뭐요? 세 살 난 딸 시집갈 때 쓰려고? 은퇴후의 전원 생활? 언제 무슨 재난이 닥칠지 모르니까 삼중 사중으로 안전 대비책 마련해놓은 거요? 그리고 집 없는 당신, 당신은 당신 수입으로 얼마나 모아야 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전혀 가망이 없는 건지 좀 설명해 보겠소? 그리고 동산은? 학생들 생활 기록부 식으로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은데, 다음 중에서 있는 것에 동그라미 쳐보시오. 1 라디오. 2. 텔레비전.3. 전축. 4. 냉장고. 5. 세탁기. 6. 비디오 7. 피아노. 8. 컴퓨터. 9. 영사기. 10. 자가용. 지금 보니 현실정에 별로 안 맞는 조사방식 같구려. 농촌에서도 빚을 내서라도 카세트 녹음기, 냉장고, 세탁기까진 일단 다 갖춰 놓는다니. 차이는 그러니까 가구가 몇 천만 원짜리냐, 식기 침대 따위는 어느 나라 제품이냐, 금고 속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몇 개 들어 있느냐, 아이들은 무슨 상표의 옷을 몇 벌이나 쌓아놓고 갈아 입히느냐에 달린 셈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러면 그런 걸 갖고 노는 당신, 아직도 부족한 게 더 있소? 때 아이들이 편안히 전국을 순회하며 산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방 침실을 갖춘 대형 버스를 특별 주문할 생각이라도? 비디오까지 갖춘 당신은 어디서 중고 소형차라도 마련할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소? 있으면 편하고, 자꾸 더 오르고 싶은 법이니까. 그건 그렇고. 전략이 워낙 무책인 당신, 당신은 입술만 씹고 있을 것이오?
그러나 나로서는 정말 묻고 싶은 문제가 있소. 심각하지 않다면 아무 것도 아니겠으나, 조심스럽게 비교해 봅시다. 고기를 담뿍 먹고 자란 아이와 라면만 먹고 자란 아이는, 건강도 건강이지만, 뇌의 활력도 다를 것 같지 않소? 어려서부터 베토벤을 듣고 피아노친 아이와 아비 악쓰는 소리만 듣고 자란 아이는 정서도 다를 것이고, 비디오로 외국어와 영화를 생활화한 아이는 라디오로 겨우 어린이 방송 듣는 아이와 감각도 다를 수 밖에.컴퓨터를 익힌 아이와 쓰레기통을 뒤진 아이는 사고방식이 결코 같을 수 없다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긴 하는 데 전혀 다르게 한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사고를 방향짓는 한 제한으로의 물적 조건. 그들은 함께 상 수 있을까? 당신, 당신도 이미 다른 당신과 전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똑 같은 말을 가지고 서로 통하지 않는 사고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하는, 사이.
조금 더, 빛기둥의 밝기가 줄어든다.
이런 건 왜 묻는 것인지? 당신의 취미는?
그 흔해빠진 독서, 음악감상, 운동 중의 하나입니까? 독서는 무슨, 만화나 신문 독서? 당신이 읽는 책 중 감명 깊었던 거 하나만 내용 요약하고 왜 감동적이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라고 흔히 묻는 데 대비해서 입시 준비하듯 한 가지를 외워 두었나요? 또, 음악감상이라면 주로 무슨? 클래식? 시대에 뒤지신 거 아니에요? 요즘엔 판소리 같은 갈 즐기셔야지. 역시 대중가요가 왔다입니까? 아, 팝송 중에서도 심오한 쪽으로? 그러면 즐기시는 운동은? 테니스? 골프? 여름에는 수상스키. 겨울에는 설상스키? 왜, 탁구나 배구, 배드민턴이 간편하실텐데. 조깅? 그냥 산책이나 달리기는 어떻습니까?
너무 야유조입니까? 사실, 취미의 원뜻은 자기과시나 사치나 지적 의무조항이 아닐테지요? 생활 속의 한 생활 밖? 결핍에의 욕구? 그래서 현실너머로, 허구의 책 속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음의 공간으로, 역동적인 근육의 율동 속으로 이끌려 가는 것일까요? 그렇게 당신은 잠시나마 현실이 아닌 무엇을 체험하고 싶은가요? 그곳이 현실보다 더 즐거운가요? 이완이면 그곳이 온통 생활의 땅이었으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곳은 항상 잠깐인가요? 잠깐이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인가요? 그래서 생활 속에서 자꾸 그리로 뛰어오르고 싶습니까? 당신의 생활이 무엇이길래? 아니, 취미를 즐길 틈이 어디 있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취미라면, 현실 너머로 길을 열면서도 언제나 현실의 한 갈피로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가만히 아기의 잠든 숨소리를 듣고 있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언제나 삶으로 되돌려 지는 취미가 아닐까요?
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하는, 사이.
도대체 무엇을 묻는지조차 확실치 않습니다만, 특기는?
특별히 잘하는 기술? 여차하면 이걸로 밥 벌어먹을 수도 있는? 그러나 직업은 아닌? 당신은 그런 거 뭐가 있습니까? 타이프를 잘 치나요? 기타가 프로급이십니까? 운전? 화투? 그런 거 말고 막판인데 정말 좀 파격적인 게 없을까요? 화장실 안가고 앉은 자리에서 맥주 한 박스 마시기, 음정이야 어떻든 노래 백곡 안 끊어지고 부르기, 시내 한복판에서 미친 듯이 춤 추기, 1분 30초간 동어반복 없이 욕하기, 최루탄 속에서도 절대로 눈물 안 흘리고 재채기 안 하기, 웃기기는 하면서도 절대로 안 웃기…
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하는, 사이.
당신의 연기가 끝나면서, 서서히 당신 빛기둥이 어두워져 간다.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당신은 어둠 속에 파묻혀 전혀 분간되지 않는다.
이 어둠이 편안 하십니까? 이 어둠 속에서 잠들고 싶으십니까? 잠들면 당신은 무슨 꿈을 꾸시나요? 계단을 헛디뎌 떨어지는 꿈? 열심히 팔을 휘젓는데 떨어지지 않는 꿈? 시험시간에 쫓기는 꿈? 누군가가 당신의 목을 조르는 꿈? 이빨 빠지는 꿈? 실컷 먹는 꿈? 잉어 꿈? 용 꿈? 잠 속에서 잠드는 꿈? 어린 시절에 혼자 숨던 어떤 어둠의 꿈?
그러면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당신이 꾸는 꿈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절대적인 당신 마음의 기준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에게 행복이란 또 무엇입니까?
침묵의 사이
조용히, 당신 자신에게, 자백하십시오. 당신이 당신의 돌이킬 수 없는 인생에 숨겨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 소설은 1989년 작이고 결코 제가 잘라낸 부분만큼 시니컬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니컬 하다함은 어투를 말합니다만.
오히려 혹독할 만큼 작가 자신은 이야기를 이야기꾼인 자신과 독자인 '당신'들을 관통해나갑니다. 소통을 전제로요.
그것은 '당신'을 끝없이 전제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인성 홈페이지에는 다음과같이 이 소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 우리가 흔히 아는 소설들은 드러나던, 드러나지 않던 '이야기꾼'이 일방적으로 말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회의하지 않고, 독자도 당연히 그가 말한 것을 일방적으로 읽는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이야기꾼(들)인 '작가 이인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그의 회의는 독자인 '당신'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 이인성'은 자신과 독자인 '당신'을 끝임없이 묻고 탐색한다. 그것의 매개체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한 마라토너의 돌연한 질주이다. 그는 「그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에서 갑자기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마친 후 갑자기 돌연 무섭게 질주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가 운동장에 마지막으로 골인한다. 작품 속의 '소설가 이인성'은 이것을 '언어의 눈'이라는 마치 카메라와 같은 수법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글을 쓰려 하지만,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여준 사실 자체도 하나의 시각이라는 생각에 그것을 쓰지 못한다. 「그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를 중심으로 소설은 반으로 나뉘어진다. 독자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수렴이라면, 이야기꾼인 '나'가 계속 증식한다던지, 혹은 '당신'과 '그'의 여러 다양한 관계들을 보여주는 발산의 과정이다. 작품집의 마지막인 '한없이 낮은 숨결'에 이르면 이제 문장마저도 무수한 쉼표와 말없음표로 나뉘어지며 발산의 극한까지 이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