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 역 /효형출판에서 간행된 벤야민의 <파사젠 베르크>를 해석한 책입니다.

이 세번 째  파트에는 상품 물신주의에 관한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3

 

상품 문제는 고립되거나 경제학의 핵심문제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모든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만 상품 관계의 구조가 부르주아 사회의 객관적 형식과 객관적 형식에 상응하는 주관적 형식을 위한 모델이 된다.

 

벤야민은 현대성의 신화적 형식을, 상품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현대의 소비자 자본주의의 조건하에 상품이 물신화하는데 초점을 두면서 드러내야 했다. 상품은 내부에 19세기 파리 사람의 사회적 삶의 모든 경향을 포함하고 있다. 벤야민에게 상품은 현대 문화 형태라는 총체성을 파악하는 열쇠를 포함한 단편이었다. 상품은 현대적 원사의 모나드적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벤야민은 상품 물신성을 삼중 구조로 이해한다. 첫 번째로 상품물신성은 현대성의 신화이자 의식의 미혹이다. 두 번째로 상품 물신성은 대상의 우상화와 관련 있다. 인간 노동의 산물은 생산자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지배적인 사물로 되돌아온다. 세 번째로 상품물신성은 비유기체에 투사된 에로틱, 왜곡된 성적 욕망이다. 상품 물신성의 첫 번째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 보았다. 볼린은 벤야민이 어떻게 상품 물성을 현대성의 원사의 통합적 요인으로 간주했는 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새로움 그 자체가 철저하게 교환될 수 있었던 원시적 삶에서 지배적인 순환적 시간 개념으로의 회귀를 제시하면서. 그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조건으로부터 도시 생활을 구별시켜 주는 새로운 상품의 판타스마고리아적 확산을 보여주려 했다.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전면적인 상품 생산은 늘 새로운 것의 생산이라는 외양속의 반복 동일성의 재생산인 거대한 신화의 복귀를 의미한다.

 

상품 물신성은 꿈꾸고 있는 도시 집단의 특성이다. 벤야민은 이렇게 썼다. 유행은 집합체가 살았던 순간의 어둠 속에 있다. 19세기의 유행과 건축은 집단의 꿈 의식에 속한다. 사람들은 광고에서처럼 깨어 있으면서도 꿈 의식을 추구한다. 19세기 산업 복합체의 산물과 사치품 그리고 이국적 물품 속에는 제국의 경계와 야망의 확장이 들어 있다. 또한 거기에는 과거의 구원을 요구하는 현재의 순간과 유토피아적 충동에 대한 밀착이 있다. 상품들과 가까운 과거의 건축 형식들은 집단적 무의식의 소망-이미지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19세기의 낡고 우스꽝스러운 지체된 인공물이다.

 벤야민의 상품 물신성 개념은 꿈 같은 세계의 요소로서 자본제적 산업 발전의 산물 이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1844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자본제적 산업 생산의 조건하에서의 인간 주체와 인간의 類的 존재의 소외를 설명하는 것과 비교된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어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들 존재의 흔적을 함유하고 있는 대상은 자본제적 교환의 체계를 통한 절차 이후에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낯선 사물이 되어 이제는 소비자인 노동자와 맞선다. 대상은 신비롭게 산출된 것처럼 보이는 신의 창조물이 된다. 벤야민에게 대량생산 기술은 기원을 회상시키는 이야기의 파괴를 의미한다. 서로 구별되지 않는 수많은 표준화된 인공물이 제작되는 대량생산은 고통 받는 인간 노동이 대상 위에 남긴 흔적을 지워버린다. 노동자의 흔적을 제거하면서 대량생산은 노동자의 삶을 부정한다. 따라서 흔적을 발견하고 대상의 역사를 폭로하며 상품의 출생지를 둘러싼 부정의와 고충을 생각해 내는 것이 벤야민의 근본적인 요청이다.*: 이글턴은 흔적을 지우거나 보존하는 일 그리고 다시 쓰는 일은 언제나 정치 투쟁이다라고 언급했다. 대량생산은 자신이 눈물없이 제작된 대상의 마법적 생산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상품의 생산으로서의 파리는 그래서 망각과 물화의 고향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기계와 상품들은 인간의 복종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들은 소박한 헌신을 추구했다.* : 인간의 기계종속이라는 관념은 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의 기술비판의 핵심 주제이다. 호르크 하이머는 이렇게 썼다. 자연 지배를 위해 우리가 더 많은 도구를 개발할수록,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더욱 더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벤야민에게 상품문화의 근본적인 면모는 상품 숭배였다. 상품은 현대성의 우상이다. 도시는 상품이 제왕이 되고 오락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공간을 구성한다. 현대 대도시는 중세도시처럼 신성한 순례의 장소이다. 파사주, 부티크와 백화점은 상품의 성소이며, 존경을 표해야 하는 신전이다. 벤야민은 세계 박람회는 상품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순례의 장소였다.고 주장한다. 1867년 파리와 1851년 런던의 수정궁에서 열렸던 세계박람회는 진보에 대한 믿음의 기념물인 현대성의 대성당이었다.

 19세기의 꿈 세계는 유토피아적 충동의 변형과 소비 상품의 광적인 숭배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의 전치와 조작에서 기인한다. 앞 장에서 논의 했던 것처럼 현대적 부르주아지는 에로틱의 내부화 혹은 길들이기에 몰두하여 육체와 육체적인 것을 부정한다. *: 벤야민이 보기에 19세기 사회적 삶의 두 가지 경향인 상품의 성애화와, 성적인 것을 안전한 부르주아의 실내의 범위 안에 숨기려는 시도는 아르 누보 양식으로 마침내 합일된다. 상품물신화의 핵심 구성 요소는 에로틱한 충동을 무생물적 대상에 투사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상품에 대해 이렇게 쓴다. 상품은 유기적인 것과 대립한다. 상품은 살아있는 육체가 비유기적 세계에 몸을 파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과의 관계에서 상품은 송장의 권리를 주장한다. 비유기적인 것의 성적 욕구에 굴복하는 물신화가 상품의 생동적인 용기이며, 상품 숭배는 물신화를 이용한다. 욕망과 정열은 자본제적 산업 기술에 의한 생명력 없는 상품을 향해 방향을 튼다. 물신주의는 성적인 것 the sexual 죽음 속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조건이다. 벤야민은 또 이렇게 쓴다. 유행은 오로지 화려하게 치장한 시체의 패러디, 여성을 통한 죽음의 도발이다.

상품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변형되며, 소비란 이런 욕망의 소비이다. 상품물신성은 현대 소비 물품의 성애화에 다름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성적인 것을 상품화하고, 상품의 성화를 의미한다. * : 여기서 벤야민은 비판이론이 발전시킨 중요한 주제들을 미리 예시한다. 마르쿠제에게 인간의 능동성과 수동성의 전체 차원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탈성애화 되었다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사회는 :리비도의 구성요소의 상품 생산과 교환의 영역으로서의 체계적 포섭을 포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는 성적인 것의 대량 생산은 자동적으로 억압에 도달한다고 쓴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현대성의 결정적 형태 중의 하나인 매춘부는 벤야민에 의하면 여성 육체의 상품화를 대변한다.

 도시는 상품 물신성의 공간이자 유행의 중심이다. 상품세계는 한계 없는 다양성의 다양성의 원천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상품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취향과 스타일, 혁신적인 형식과 디자인의 집중점이다. 파리는 가장 새롭고 좋은 것들의 장소이다. 유행 개념은, 사물은 점점 나아지며 가장 최근의 것이 이전 것 보다 명확하게 우월하다는 지속적인 개선 개념으로부터 유래한다. 상품의 왕국 안에서 유행은 기술 영역 속의 진보와 동일하다. 진기함에 대한 몰두와 진보의 신화적 성격 폭로가 벤야민 파리 저작의 핵심이다. 벤야민은 1904년 짐멜의 사회적 차별화의 대상으로서의 유행에 관한 에세이에 의존한다. 유행하는 물건의 소유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 모든 사람이 유행을 따라 유행의 엘리트적 지위가 상실되면 유행은 유행이 아닌 것이 된다. 유행에 대한 민감함은 소비세계의 아방가르드가 되는 것이며, 유행이 역설적으로 만들어내는 낡은 대상의 불합리와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짐멜은 이렇게 썼다. 유행이 퍼져나가고 점차 사라져 가는 것처럼 진기함의 매혹은 무상성이다. 유동하고 무상한 유행은 덧없음의 아름다움이며 그 자체로 현대성의 체화이다. 벤야민 분석의 핵심은 가장 새로운 것은 이미 있었던 것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두드러진 혁신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짐멜이 지적했듯이 유행은 낡은 형식으로 반복적으로 되돌아간다.

유행의 과정은 순환이다. 유행이 잊혀질 때 그 인기가 되살아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벤야민에게 유행은 새로움의 외양만을 구성하는 혁신과 변화에 대한 이미지이자 환영에 불과했다. 새로운 것이 있었던 것으로부터 구별되기 힘들 듯이 새로움은 전혀 새로움이 아니다. 대량생산은 변화하지 않는 동일한 대상들의 재생산이다. 유행은 새로운 것처럼 가장하고 있는 반복 동일성의 끝없는 생산과 소비이다. 프리스비에 의하면 상품 순환의 세계는 새로운 것은 항상 같은 것임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벤야민에게 현대적인 것은 반복 동일성의 맥락 속에서의 새로움이다. 대도시 환경의 경험은 새로울 것이 없는 중단 없는 반복과의 끝없는 조우이다. 새로움은 유행이 부단한 대리인인 잘못된 의식의 정수이다. 새로움의 환영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거울처럼 영원한 동일성의 환영을 투영한다. 이러한 투영의 산물이 부르주아가 허위의식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문화사의 판타스마고리아 이다. 대도시 환경의 경험은 새로울 것이 없는 중단 없는 반복과의 끝없는 조우이다. 이것이 현대성의 신화적 성격의 바탕이다. 상품 물신화와 유행의 매혹은 현대 대도시를 반쯤 잠든 지루한 노에 상태로 마법을 거는 핵심 요소들이다.

항상 동일한 유행이 지루함의 기원이다. 도시 소비자의 결정적 경험은 권태이다. 유행은 새로울 것이 없는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서 탈출하려는 시도이다. 유행은 진기함의 신기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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