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Brian Massumi의 책 The Parables For The Virtual을 번역하고 있다.
예전에 Frederic Jameson을 번역하면서 마음 속으로 했던 다짐("제임슨처럼 쓴 글은 절대로 번역하지 않겠다")이 다시금 강하게 떠오른다.
Massumi의 저 책은 Gilles Deleuze의 정동(affects)에 관한 이론을 Frederic Jameson의 스타일로 쓴 것이다!
Massumi의 책에 씌어진 몇 몇 단어들이 눈에 보인다.
"경계가 아니라 역동적 문턱에 의해 분리된 지대들", "잠재성과 현실성", "역동과 정체", "창조와 반복", . . .
이 모든 교리와도 같은 덕담들, 주문들, 암기문들, 다짐들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또 다시 든다.
"삶은 창조이다. 삶은 잠재성이다. . ." 이 암기문들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암기문들 자체라기 보다는, 이들이 무엇에 근간을 두고 있는지, 그 암기문들이 나오게 된 출처,
실제로 그 현실태들을 찾아서 설명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경계가 아니라 역동적 문턱에 의해 분리된 지대들의 예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찾고나면 "이게 뭐야?!"라고 할 정도로,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사소한 예들을 찾아야 한다.
너무나 사소해서 발견이라기 보다는 창조 혹은 발명이라고 해야할 만큼 "거대한 지리멸렬"을 찾아야 한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에서 그 예들을 찾아, 그것에 밑줄을 긋고, 강조를 하여, 강화할 수 있도록.
그 암기문과 명제들로 이루어진 이론이 다짐이나 의지가 아니라, 단지 삶의 설명이었음을 밝히는 것.
이론이 실천의 강령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삶의 실행에 대한 찬사 혹은 제청 혹은 정당화 혹은 긍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들뢰즈가 영화들을 논의하면서, 자신의 그 거대한 명제들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했던 사소하고도 지리멸렬한 영화 이미지의 징후들처럼,
문필가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이제 비만덩어리가 되어버린 육중한 명제와 개념들의 창조 외에,
기름끼 쫙 뺀 앙상한 육체들, 혹은 너무나 앙상해서 식별불가능한 텔로스(Telos)를 제시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1년에서 2년을 잡고 지금 쓰고 있는 "씨네마톨로지"(Cinematology)를 가급적이면 그런 방향으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