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백화점 내부 복도에 나 있는 쇼윈도우.
수 백개의 유리와 거울들이 내부 공간을 증식시키고 현란하게 한다. 거울에 비친 백화점 내부는 두 배 세 배로 커 보이고,
사람이 지나갈라치면, 유리색에 따라 다른 색과 굴절광을 발산하면서,
그 사람은 수백개의 형상들로 부서지고 흩어졌다가,
다시 그가 계단을 내려갈 때 쯤엔, 그 형상들이 하나의 점과 선으로 수축한다.
어떤 경우엔 그의 신체가 조각나서 이 쪽엔 다리가, 저 쪽엔 머리가, 다른 쪽엔 몸통, 허리, . . . 시각적 큐비즘이 실현된다.
마치 백화점의 무의식이 현시라도 한 것처럼, 공간 전체의 데칼코마니가 사방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오늘 아침.
창문을 때리는 빗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더니, 비가 멈추자 투명한 창문에 이슬처럼 빗방울들이 징그럽게 맺혀 있다.
맺힌 빗방울은 나무며, 아스팔트며, 하늘이며, 구름이며, 자동차며, . . . 심지어 그 소음들과 내 불안한 마음까지 꼬깃꼬깃 머금고 있다.
내가 맨 눈으로 보는 이 세계와는 딴판의 어떤 다른 세계가, 무한히 다양한 세계들이 그 빗방울 안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만은 없는, 엷지만 강렬한 어떤 세계가,
우리가 확고하게 믿고있는 현실 곁에, 어쩌면 그 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세계가 함께 있는 것만 같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몸 동작을 멈추고, 희미하고도 아주 이상한 비전을 경험했다--Michaelangelo Antonioni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경험하는, 특히 <붉은사막>(Red Desert)에서 그 신경증 여인이 보았던 섬망상태(delirium)와 본성적으로 다르지 않은 그러한 착란적 비전.